|
꼰대에도 유전자가 있다면<br><br> 요즘 꼰대라는 단어가 자주 들린다. 궁금하다. 꼰대도 유전이 될까? <br><br>아주 황당하기만 한 생각은 아니다. <br><br>유전학이 유행을 타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유전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br><br>반면 모든 행위는 학습되며 유전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br><br>현대 유전학의 발달은 두 입장 모두 틀렸다는 것을 알려준다. <br><br>행위에도 유전자가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성격도 어느 정도는 타고난다.<br><br>그런데 꼰대 짓은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킨다. <br><br>진화론의 입장에서 봤을 때, 꼰대 유전자는 남아나기 힘들다. <br><br>많은 사람들이 싫어한다면 꼰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살아가기 힘들다. <br><br>짝이 될 사람들이 싫어한다면 짝짓기에 실패하여 그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br><br>삶에도 재생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br><br>오히려 해가 되는 유전자는 유전자 풀에서 오랜 기간 살아남을 수 없다. <br><br>조만간 도태되고야 만다. <br><br>거부감에도 불구하고 도태되지 않은 채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서 계속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br><br>개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해롭기까지 한 유전자가 계속 유전자 풀에 남아있을 수 있다. <br><br>다면발현(pleiotropy)은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기능에 관여하는 경우이다. <br><br>어떤 유전자가 성장과 짝짓기에 도움이 되는 속성 A에 관여한다고 하자. <br><br>그 유전자는 또 다른 속성 B에도 관여하는데, B 속성은 개인의 삶에 해가 된다고 하자. <br><br>단, B 속성은 재생산이 끝난 다음 노년에 발현한다고 하자. <br><br>그렇다면 유년기와 청년기에 이익이 되는 A 속성 때문에 유전자가 계속 살아남고 <br><br>노년기에 해가 되는 B 속성은 부속물로 발현된다.<br><br>다면발현으로 치매 현상을 설명하기도 한다. <br><br>치매를 일으키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에 남아있는 이유는 그 유전자가 어리고 <br><br>젊은 시절에 유익한 기능을 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br><br>‘아포지단백질 엡실론(apolipoprotein epsilon)’ 유전자는 혈액에서 지단백질을 깨끗하게 치우는 기능을 한다. <br><br>이 유전자 덕분에 인간은 많은 지방과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 <br><br>한편 아포지단백질 엡실론은 두뇌 세포를 변형시켜서 치매를 일으킨다는 주장이 있다. <br><br>똑같은 유전자가 유년기와 청년기에는 도움이 되고 노년기에는 해가 되는 것이다.<br><br>다면발현은 유전자 치료에 조심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br><br>어떤 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없애면 그 유전자가 관여하는 다른 순기능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br><br>치매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로 잘라내어서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할 때 조심스럽게 검토해야하는 부분이다.<br><br>꼰대라는 유전자 역시 다면발현일 수도 있겠다. <br><br>꼰대 행위는 일정 나이 이상의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속성이다. <br><br>꼰대는 권위적이고, 다른 사람을 강압하고,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독단적이고, 단정적이다. <br><br>독단적인 가치 판단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훈계하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br><br>자기가 옳다고 확신하며 다른 사람의 행위에 대해 지적질을 한다.<br><br>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우리가 꼰대 짓이라고 비난하는 행위는 <br><br>사실 젊은 시절에 긍정적으로 평가받던 행위들이 변형된 모습이다. <br><br>청년 시절에 기성세대가 저질러 놓은 불의에 굴하지 않고 또박또박 반기를 들고, <br><br>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비판의 목소리를 누구에게든지 언제든지 <br><br>낼 수 있는 패기가 기성세대가 된 다음에는 꼰대 짓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br><br>그렇다면 ‘꼰대’라는 유전자는 ‘패기’라는 유전자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br><br>그렇다면 꼰대 짓은 중노년과 어쩔 수 없이 함께 오는 속성으로 앞으로도 계속 만연할까?<br><br>꼰대라는 유전자는 없다. <br><br>학습된 행위일 뿐이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유전자만큼 막강한 적응력이 있다. <br><br>어떤 환경에서 도움이 되는 행위는 다른 환경에서는 해가 될 수 있다. <br><br>의식 있는 중노년들 중에는 꼰대 짓이 무엇인지 서로 나누고, <br><br>어떻게 해야 꼰대가 되지 않을지 다양한 글로 공유하면서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br><br>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br><br>젊은 날의 패기를 되살려서 새로운 행위와 태도에 도전하면 그 또한 좋지 않을까.<br><br><이상희 / UC 리버사이드 인류학교수><b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