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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우 박사의 개발품
관리자
2719 2010-03-16 오후 6:55:29


평생을 한글 타자기 개발 등 한글사랑 운동에 헌신하였고,

이름은 꼭 한글로만 썼던 공병우 박사.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도 말고 장례식도 치르지 말며, 쓸만한 장기는 모두 기증하고 남은 시신도

해부용으로 기증하라"고 유언하시며 빈손으로 가신분.

평북 벽동 출신의 공병우 박사는 '한글 운동과 한글 기계화 운동의 화신' 이라 일컫는 애칭과 함께

좀 나이가 지긋한 이들에게는 '공안과' 와 안과의사 공병우씨가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사실, 공병우 박사는 스물 한살때인 1926년 의사 검정시험에 합격한 뒤 대학도 다니지 않은 채로

1936년 일본 나고야 제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38년 공안과를 열어 세우고 다시 폐업한 후

그의 둘째아들인 영태씨가 공안과를 열기까지 안과의사였다.



한글운동, 한글 기계화 운동 역시 공안과 개업초기인 1938년 눈병환자로서 병원을 찾은

한글학자 이극로 선생에 의해 고유문화와 한글에 대한 '개안'을 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본격적인 한글에 대한 트임은 해방 뒤 영문학 공부에 몰두하는 친구들에게 반발하여 한글학자 권승욱씨를 집으로

모셔다 한글공부에 탐닉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즈음 그는 일본어로된 <소안 과학> 이라는 저서를 한글판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손으로 정서하는 것이

너무도 느리다는 사실에 유의하게 되었고, 차라리 한글타자기로 찍어내면 훨씬 더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거리로 달려나가 미국에서 제작해온 타자기 두 대를 구입해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5벌식이어서 손으로 쓰는 것보다 결코 빠르지 않다고 느낀 공박사는 결국 자신이 보다

실용적인 자판을 만들어 쓰기 위해, 그날로 그 타자기를 분해하였고,

그것이 결국 그의 일생을 좌우한 <한글기계화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왼쪽에 자음을 오른쪽엔 모음을, 그리고 바깥쪽엔 받침이 안치된 3벌식 타자기의 설계를 1949년에 완성하므로써

그의 생애 최초의 한글타자기 발명이 되었다.

1950년 그 설계도면을 미국의 타자기 제조회사인 '언더우드' 에 보내 첫 시제품을 제작하게 되는데

이 일로 한국인 최초로 미국 특허를 얻어낸 한국타자기 발명가로서의 일생을 시작하였다.

한글의 초성, 중성 ,종성을 구별하여 자판을 배열하였기 때문에 한글 구성원리에도 맞을 뿐만아니라,

누름 판을 거의 쓸 필요가 없고, 자음과 모음 배열을 오른손에 더 비중을 두어 오른손잡이에 편리하게 꾸며져 있어

능률면에서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세벌식 타자기를 만들어 보급하다가 정부가 네벌식을 표준형으로 정하자 자신이

개발한 세벌식타자기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며 정부와 의로운 싸움을 벌이기도 하였다.



박사님의 발명품이예요~~

▷ 공병우 누도 검사법(1941)
▷ 국내 최초 콘텍트렌즈 국산 개발(1959)
▷ 맹인용 점자 타자기 개발(1971)
▷ 중국 주음 부호 타자기 개발(1971)
▷ 맹인용 한글 워드프로세서 개발(1989)
▷ 속도 타자기의 쌍초점 특허(1948)
▷ 국산 활자 개발
▷ 한글 텔레타이프 개발(1958)
▷ 한영 겸용 타자기의 개발(1972)
▷ 3단 한영 타자기 개발(1972)
▷ 국산 타자기 생산(1964)
▷ 한영 겸용 텔렉스 개발(1975)
▷ 한글 모노타이프 개발(1976)
▷ 한영 BALL 타자기 개발(1974)
▷ 한글 워드프로세서(세벌식) 개발(1984)
▷ 아이텍 사진 식자기 개발(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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